고깃집에 앉아 접시를 받으면 대개 그 자리에서 결론이 납니다. 썰린 두께가 그 집의 성격을 거의 다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얇게 썰려 있으면 빨리 익고 실패할 일이 없는 대신 굽는 재미가 없고, 두껍게 썰려 있으면 정반대입니다. 그런데 김포 구래동 도돈가에서 받은 접시에는 아예 썰린 자국이 없었습니다. 목살은 손바닥만 한 덩어리 한 장, 오겹살은 그보다 더 두꺼운 덩이 두 개였습니다.
2026년 8월 31일 월요일 저녁, 6시 25분쯤 자리에 앉았습니다. 테이블 한가운데가 뚫려 있고 그 안에 연탄이 통째로 들어 있는 집입니다. 시킨 건 메뉴판 맨 윗줄의 산청흑돼지세트였습니다. 이 글은 그날 찍은 사진과 매장에 붙어 있던 안내문만을 근거로 정리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이 집에 앉기 전까지 흑돼지는 제주 것뿐인 줄 알았습니다. 흑돼지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동으로 제주도 여행이 따라 나오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벽에 붙은 안내문을 읽다가 잠깐 멈췄습니다.
「지리산 흑돼지 소개」
물 맑고 공기 좋은 지리산 아랫마을 경상남도 산청에서 자란 진귀한 흑돼지 ‘지리산 흑돼지’입니다.
지리산 흑돼지는 다른 흑돼지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비계의 고소한 참맛과 깔끔함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고온의 연탄 위에서 굽는 지리산 흑돼지의 쫄깃한 식감과 풍부한 감칠맛을 느껴보세요.
그 옆에는 검은 액자에 「산청 지리산 흑돼지 / SANCHEONG JIRISAN BLACK PORK」이라고 영문까지 병기해 붙여 놓았습니다. 메뉴판 첫 줄 이름도 그냥 흑돼지세트가 아니라 산청흑돼지세트입니다. 상호에는 산청이 없는데 메뉴 이름에는 박아 두었습니다. 어디서 받아오는지를 굳이 감추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제주 흑돼지가 유명한 건 유명한 대로 이유가 있고 저도 제주에서 먹는 걸 좋아합니다. 다만 흑돼지 = 제주라는 등식이 그냥 제 머릿속 기본값이었을 뿐이라는 걸 이날 알았습니다. 산청은 지리산 서쪽 자락의 경남 내륙입니다. 산지가 다르면 사육 환경도 사료도 다르니, 같은 흑돼지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결이 똑같을 이유가 없습니다.

연탄구이라고 하면 반가움과 걱정이 같이 옵니다. 불향은 좋은데 가스 냄새가 걸리고, 옷에 밸 냄새가 걸리고, 환기가 시원찮으면 머리가 아플까 봐 걸립니다. 이 집은 그 질문을 아는 눈치입니다. 벽에 이렇게 써 붙여 놓았습니다.
「청결연탄」
도돈가에서 사용하는 청결연탄은 연탄가스 걱정 없이 구워드실 수 있습니다.
특허받은 청결연탄 사용으로 몸에 해로운 황화수소를 빼서 안전하며, 연탄 특유의 불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업소가 스스로 내건 설명이니 제가 성분을 검증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손님이 실제로 걱정하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 벽에 붙여 두었다는 것 자체가 정보입니다. 연탄집에 처음 가는 일행을 데려갈 때 설득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실물 환기 설비도 같이 봐 두면 좋습니다. 테이블마다 굵은 주름관 후드가 천장에서 내려와 있고, 관마다 테이블 번호가 붙어 있습니다. 자리를 잡을 때 후드가 판 바로 위에 오도록 위치를 한 번만 잡아 두면 연기 방향이 확 달라집니다. 그래도 직화 연탄집이라 옷 냄새는 각오하는 편이 맞습니다. 이건 뒤 단점 항목에서 다시 적겠습니다.

이 집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접시를 받는 순간입니다. 초벌도 없고 슬라이스도 없습니다. 목살은 마블링이 그물처럼 퍼진 통짜 한 덩이, 오겹살은 껍질 층이 그대로 붙은 두툼한 덩이로 나옵니다. 즉 굽는 노동이 손님 몫입니다. 편하게 앉아 받아먹는 집이 아니라, 판을 붙들고 놀 사람에게 맞는 집입니다.
덩어리로 내는 이유는 굽는 순서를 보면 납득이 됩니다. 순서는 이랬습니다.
핵심은 자르는 시점을 늦춘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잘라 놓으면 잘린 면마다 열이 파고들어 물이 빠집니다. 덩어리째 겉을 먼저 잡아 두면 안쪽이 익는 동안 육즙이 빠져나갈 데가 없습니다. 두께 있는 고기를 연탄 직화에 올릴 때 이게 특히 중요합니다. 연탄은 위에서 누르는 불이 아니라 아래에서 계속 올라오는 복사열이라 화력이 세고 꾸준합니다. 얇게 썰어 올리면 순식간에 마릅니다.
부작용도 있습니다. 판 위에서 상태를 계속 봐야 하고, 자르는 타이밍을 놓치면 겉만 타고 속은 안 익는 구간이 생깁니다. 저는 오겹살을 먼저 자르고 목살을 조금 더 통째로 뒀는데 결과적으로 이 순서가 편했습니다. 오겹살은 지방이 많아 빨리 익고, 목살은 두꺼운 만큼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메뉴판에 고기만 일곱 줄입니다. 처음 가면 고르기가 애매하니 성격 위주로 정리해 두겠습니다. 금액은 뒤쪽 차림표에 따로 모아 두었습니다.
| 부위 | 이런 사람에게 |
|---|---|
| 흑목살 | 덩어리로 씹는 맛을 원할 때. 이 집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위입니다. 두께가 있어 실패 여지도 크니 급하게 자르지 마세요. |
| 흑오겹살 | 껍질 층까지 붙은 오겹입니다. 지방이 연탄에 떨어지며 불향이 가장 세게 붙습니다. 껍질 면을 세워 눌러 굽는 재미가 있습니다. |
| 눈꽃백삼겹살 | 고기 줄에서 가장 부담이 적은 자리입니다. 흑돼지 말고 다른 결을 하나 섞어 비교하고 싶을 때. |
| 흑생갈비 | 메뉴판에 「한정판매」가 따로 적혀 있습니다. 있으면 잡고 없으면 다음에. 벽 포스터에도 따로 걸려 있는 간판 부위입니다. |
| 흑가브리살 | 목살 옆에서 떼는 소량 부위입니다. 셋 이상일 때 한 접시 끼워 넣기 좋습니다. |
| 벌집껍데기 | 벽 포스터 메뉴입니다. 「셀프로 구워 드셔야 합니다」라고 못 박아 놨으니 굽기 자신 없으면 피하세요. |
둘이 갔을 때의 조합부터 말씀드리면, 메뉴판이 이미 답을 정해 놓았습니다. 맨 윗줄 산청흑돼지세트에만 「추천」 표시가 붙어 있고 구성은 흑목살 300g + 흑오겹살 250g입니다. 즉 이 집이 밀고 싶은 조합은 목살과 오겹살을 한 판에 같이 굽는 것입니다. 결이 다른 두 부위를 올려놓고 번갈아 집으라는 구성이라 판 위 그림도 심심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 세트로 시켰습니다.
그리고 메뉴판에는 안 적혀 있지만 이 세트를 시키면 된장찌개가 같이 나옵니다. 저는 따로 시킨 적이 없는데 고기를 굽는 사이에 뚝배기가 올라왔습니다. 벽 포스터에 된장찌개(소)가 단품 3,000원으로 걸려 있는 걸 생각하면, 세트를 고를 때 이 부분을 계산에 넣어도 됩니다. 밥이나 국물을 어차피 시킬 자리라면 세트 쪽 셈이 한 번 더 유리해지는 셈입니다.
두 번째 줄 흑백눈꽃세트는 목살은 그대로 두고 오겹살 자리를 눈꽃삼겹살로 바꾼 구성입니다. 껍질 붙은 오겹이 부담스러운 일행이 있으면 이쪽이 안전합니다. 세트를 쓰지 않고 단품 두 접시로 가는 선택지도 있는데 세트 쪽이 중량이 더 붙고 국물까지 딸려 옵니다. 다만 소식하는 둘이라면 굳이 세트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기본 상차림은 화려하지 않은 대신 쓸 데가 분명한 구성입니다. 양념 파채가 한 대접, 배추김치와 통마늘이 기름을 자작하게 깐 접시에 같이 담겨 나옵니다. 이 접시가 핵심입니다. 김치와 마늘을 그 기름째 판에 올려 구워 먹으라는 세팅이라, 고기 자리 옆에 김치 자리를 따로 잡아 두면 편합니다.
찍어 먹는 건 두 갈래입니다. 2칸 종지에 쌈장과 굵은소금이 나오고 별도로 양념장 종지가 하나 더 붙습니다. 두께 있는 고기를 첫 점부터 쌈장에 담그면 불향이 다 가려집니다. 첫 점은 굵은소금만 살짝 찍어 연탄향을 먼저 보고, 그다음부터 쌈장이나 양념장으로 넘어가는 편이 순서상 낫습니다.
반찬은 나물무침, 무생채, 콩나물무침 세 가지입니다. 그리고 스테인리스 그릇에 흰 소면이 같이 올라옵니다. 고깃집에서 소면이 처음부터 깔리는 구성이 흔하지는 않은데, 김치와 파채를 곁들여 중간중간 넣어 먹으면 기름진 입을 끊어 줍니다.


국물은 따로 시키지 않아도 나왔습니다. 세트에 된장찌개가 포함이라 고기를 굽는 사이에 뚝배기가 올라옵니다. 애호박과 두부가 들어간 국물이 끓는 채로 나오고 종이컵에 담긴 보리차, 깍두기가 같이 붙습니다. 고깃집 된장찌개는 대개 다 먹고 나서 마무리로 붙이는 물건인데, 여기는 굽는 동안 이미 옆에 있습니다. 첫 점을 소금으로 먹고 나서 바로 국물 한 술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게 생각보다 편했습니다.
더 붙이고 싶으면 선택지도 넉넉합니다. 사이드 보드에는 청국장이 「BEST」 표시로 따로 올라 있고, 밥까지 가고 싶으면 차돌된장솥밥이나 추억의도시락, 시원하게 끊고 싶으면 냉누룽지나 물냉면·비빔냉면이 있습니다.

좋았던 것만 적으면 후기가 아니라 홍보문이 됩니다. 이 집을 추천하면서도 미리 알려 드려야 할 게 네 가지 있습니다.
첫째, 옷 냄새는 각오해야 합니다. 청결연탄 안내문이 붙어 있고 테이블마다 후드가 내려와 있어도, 지방이 연탄에 직접 떨어지는 구조라 연기가 납니다. 그 연기가 곧 불향이니 냄새를 없애면 이 집의 장점도 같이 사라집니다. 중요한 약속이 뒤에 있는 날에는 피하는 게 맞습니다.
둘째, 굽기가 손님 몫입니다. 초벌해서 내주는 집이 아니고 애초에 잘려 있지도 않습니다. 굽는 걸 즐기는 사람에게는 이게 장점이지만, 판 앞에 앉기 싫은 자리라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껍데기 메뉴에는 아예 「셀프로 구워 드셔야 합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셋째, 점심에는 못 갑니다. 매장 포스터에 「4시 ~ 1시」, 영문으로 OPEN PM 4:00 · CLOSE AM 1:00이라고 크게 붙어 있습니다. 포스터 아래 문구도 퇴근 후 한잔입니다. 저녁 자리 전용이라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넷째, 세트는 둘이 먹기에 적은 양이 아닙니다. 추천 세트가 550g 구성이라 소식하는 둘이면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땐 단품 한 접시로 시작해 모자라면 추가하는 쪽이 낫습니다.

Q. 몇 시부터 하나요?
매장 포스터 기준 오후 4시 오픈, 마감은 새벽 1시로 적혀 있습니다. 다만 요일마다 마감 시각이 다르다는 정보가 있어, 늦게 가실 계획이면 지도 앱에서 그날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Q. 주차는요?
이날 제가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구래동 상가 밀집 구역이라 건물 주차 여부와 무료 시간은 전화로 미리 물어보시는 게 확실합니다. 확인 안 된 걸 확인된 것처럼 적지 않겠습니다.
Q. 고기 구워 주나요?
제가 갔던 시간이 주로 바쁘지 않은시간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구워 주었어요. 너무 잘 구우시더라구요. 굿!
.
Q. 세트에 뭐가 같이 나오나요?
메뉴판에는 고기 중량만 적혀 있는데, 산청흑돼지세트를 시키니 된장찌개가 같이 나왔습니다. 따로 주문하지 않았는데 올라왔습니다. 밥이나 국물을 어차피 시킬 생각이었다면 세트 쪽 셈이 조금 더 낫습니다. 다만 저는 한 번 방문한 기준이라, 항상 그런지는 주문할 때 한 번 확인해 보시는 게 확실합니다.
Q. 흑돼지면 제주산인가요?
아닙니다. 매장 안내문에 경상남도 산청, 지리산 흑돼지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메뉴 이름도 산청흑돼지세트입니다.
Q. 할인되는 게 있나요?
벽에 「군인·생일자 10% 할인」 안내가 붙어 있었습니다. 조건과 증빙 방법까지는 적혀 있지 않으니 주문 전에 물어보시면 됩니다.
Q. 술은 뭐가 있나요?
소주와 맥주, 그리고 한라산이 따로 한 줄 있습니다. 음료수와 공기밥도 보드에 같이 적혀 있습니다.
2026년 8월 31일 방문 당시 매장 메뉴판과 벽 포스터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가격은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고기 | 중량·구성 | 가격 |
|---|---|---|
| 산청흑돼지세트 (추천) | 흑목살 300g + 흑오겹살 250g + 된장찌개 (방문 시 같이 나옴) |
58,000 |
| 흑백눈꽃세트 | 흑목살 300g + 눈꽃삼겹살 250g | 54,000 |
| 흑오겹살 | 200g | 21,000 |
| 흑목살 | 200g | 21,000 |
| 흑생갈비 | 180g · 한정판매 | 19,000 |
| 흑가브리살 | 180g | 19,000 |
| 눈꽃백삼겹살 | 180g | 16,000 |
| 사이드 · 주류 | 가격 | 벽 포스터 | 가격 |
|---|---|---|---|
| 청국장 BEST | 8,000 | 차돌된장솥밥 | 8,000 |
| 물냉면 | 7,000 | 벌집껍데기 180g | 8,000 |
| 비빔냉면 | 7,000 | 냉누룽지 | 5,000 |
| 추억의도시락 | 5,000 | 된장찌개 (소) | 3,000 |
| 참치마요주먹밥 | 4,000 | 비빔국수 | 7,000 |
| 공기밥 | 1,000 | 흑생갈비 180g | 19,000 |
| 소주 / 맥주 | 5,000 | ||
| 한라산 | 6,000 | ||
| 음료수 | 2,000 |
※ 사이드 보드의 한 칸은 촬영 당시 비닐봉지에 가려 메뉴명이 보이지 않아 표에서 뺐습니다. 추측해서 채우지 않았습니다.
※ 벽 포스터의 된장찌개(소) 3,000원은 단품으로 시켰을 때 가격입니다. 산청흑돼지세트에는 방문 당시 된장찌개가 같이 나왔습니다.

도돈가는 편하게 받아먹는 집이 아니라 판을 붙들고 굽는 집입니다. 그 대신 두께를 살린 덩어리 고기와 연탄 직화라는, 요즘 흔치 않은 조합을 내줍니다. 흑돼지 하면 제주만 떠올리던 사람에게는 산청 지리산 흑돼지라는 선택지를 하나 더 알게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맞는 자리와 안 맞는 자리가 분명합니다. 퇴근 후 소주 한잔, 굽는 걸 즐기는 친구들, 연탄 불향을 좋아하는 회식이라면 잘 맞습니다. 반대로 점심 약속, 냄새가 곤란한 일정, 고기를 받아만 먹고 싶은 자리라면 다른 곳이 낫습니다. 저는 흑생갈비가 있는 날을 노려서 다시 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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